인천과 경기도는 한강과 서해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로, 역사적으로 수많은 포구와 장터가 형성된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조운(漕運)의 중심지이자 수도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기에, 배가 드나드는 포구마다 자연스럽게 장이 열렸다. 농산물, 소금, 어패류, 생필품이 활발히 거래되었으며, 외지 상인과의 만남을 통해 경제뿐 아니라 문화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철도·도로망이 확충되고 대규모 항만이 등장하면서 작은 포구 장터들은 점차 쇠퇴했다. 오늘날에는 흔적이 거의 사라졌지만, ‘송현시장’, ‘장고개’, ‘포구말’ 같은 지명은 그 과거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지명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지형명이 아니라 수백 년간 이어진 사람들의 생활사와 공동체 기억을 엿볼 수 있다.
인천 제물포 – 국제 교역의 관문에서 장터로
인천의 제물포는 본래 조선시대 작은 포구였다. 조운선을 비롯해 지방 상인들이 곡물과 생필품을 들여왔고, 포구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장터가 형성되었다. 장날이면 내륙 농민과 어민들이 모여 교역이 이루어졌고, 인근 주민들이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개항 이후 제물포는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하면서 전통 장터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제물포’라는 이름 자체가 곡물과 물자가 모이던 포구의 기원을 간직하고 있다.
인천 송현시장 – 장터에서 현대시장으로
인천 동구 송현동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송현시장이 있다. 본래 이 지역은 작은 포구와 연결된 마을이었으며, 어획물과 농산물이 교환되던 장터가 자리했다. 시간이 흐르며 근대적 시장으로 변모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송현 장터’라 부르며 기억을 이어간다. 송현시장은 과거 포구 장터가 현대의 재래시장으로 이어진 드문 사례로, 지역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강화도 외포리 장터 – 섬 교역의 중심지
강화도 외포리는 조선시대부터 강화 해협을 오가는 포구로 기능했다. 이곳에는 ‘외포리 장터’가 형성되어 농산물, 소금, 해산물이 활발히 교환되었다. 강화도는 섬이지만 육지와 가까워 교역이 활발했고, 외포리 장터는 지역 경제의 핵심이었다. 지금은 어항으로 남아 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외포 장날’이라는 표현이 쓰이며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 김포 장기동 – 장터에서 유래된 지명
김포시 장기동은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장터의 흔적을 품고 있다. ‘장기(場基)’는 곧 장이 서던 터라는 뜻이다. 이곳은 과거 한강 포구와 연결되어 내륙 농산물과 어패류가 교환되던 중심지였다. 장기동은 오늘날 신도시로 변모했지만, 지명 속에는 여전히 장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수원 장안문 밖 장터 – 행궁과 연결된 장
조선시대 수원은 행궁이 있던 도시로, 장터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장안문 밖에는 포구와 연결된 장터가 있었고, 농산물과 생활용품이 활발히 거래되었다. 수원은 내륙도시였지만, 인근의 작은 하천과 물길을 따라 물자가 오갔으며, 장터는 이러한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현재는 도로와 건물로 바뀌었지만, ‘장안동’, ‘장안문’ 등의 이름 속에 장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안산 풍도 장터 – 섬 주민의 생존 기반
경기 안산 앞바다의 작은 섬 풍도에는 한때 장터가 있었다. 풍도는 작은 섬이라 자급자족이 어려웠기에, 장날마다 주민들이 모여 생선을 내놓고 외지 상인에게 곡물과 생필품을 구입했다. 풍도의 장터는 단순 거래 공간을 넘어 주민들의 생활 공동체를 유지하는 구심점이었다. 오늘날은 섬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장터의 흔적은 주민들의 구술과 지명 속에 전해진다.
경기·인천 포구 장터의 특징
경기·인천 지역의 포구 장터는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 수도와 가까움: 한강과 연결된 교역망 덕분에 물자 유입이 빠르고 활발했다.
 - 섬과 내륙의 교차: 강화도·풍도 같은 섬 장터는 내륙과 교역을 통해 생존을 유지했다.
 - 지명 속 흔적: 장기동, 장안동, 송현시장 등은 모두 장터에서 비롯된 지명으로, 과거 생활사를 증명한다.
 
인천·경기 주요 사라진 포구 장터 지명 정리
| 인천 중구 | 제물포 | 포구+장터 | 수도 관문, 국제항으로 발전 | 
| 인천 동구 | 송현시장 | 장터 → 현대시장 | 포구 장터가 전통시장으로 이어진 사례 | 
| 강화군 외포리 | 외포리 장터 | 섬 포구+장터 | 강화도 교역의 중심지 | 
| 김포시 | 장기동 | 장터 터 | 한강 포구와 연결, 지명에 장터 흔적 남음 | 
| 수원시 | 장안문 일대 | 내륙 장터 | 행궁과 연결, 생활 교역 중심 | 
| 안산시 | 풍도 장터 | 섬 포구+장터 | 주민 생존의 기반, 공동체 구심점 | 
지명 속에서 읽는 생활사
인천·경기의 지명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과거 생활사를 담고 있다. ‘장기동’은 장이 서던 터였음을, ‘송현시장’은 포구 장터가 현대 시장으로 이어졌음을, ‘외포리’는 섬과 내륙 교역의 중심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지명은 오늘날에도 지역민들의 기억과 생활 속에 살아 있으며, 단순히 지리적 정보가 아니라 집단적 기억의 기록이다.

인천·경기 지역의 사라진 포구 장터는 수도와 가까운 지리적 장점 덕분에 활발히 기능했으나, 근대 교통망 발달과 항만 확충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제물포, 송현시장, 외포리 장터, 장기동, 수원 장안문 장터, 안산 풍도 장터 등은 모두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생존을 지탱한 공간이었다. 특히 이 지역 장터는 내륙과 해안, 섬과 육지를 연결하며 교류의 매개체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의의를 지닌다. 지금은 흔적이 희미해졌지만, 지명과 주민들의 기억 속에 그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앞으로 인천·경기의 사라진 포구 장터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포구 장터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강원도 - 사라진 포구 장터와 지명 속 흔적 (1) | 2025.08.22 | 
|---|---|
| 충청도 - 사라진 포구 장터와 지명속 흔적 (0) | 2025.08.21 | 
| 경상도 - 포구 장터 기록 (0) | 2025.08.20 | 
| 전라도 사라진 포구 장터와 지명 속 흔적 (0) | 2025.08.19 | 
| 사라진 포구 장터와 현재 남아 있는 지명 속 흔적 (1) | 2025.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