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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 장터 기록

경상도 - 포구 장터 기록

by xolo1215 2025.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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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지역은 남해와 동해에 접해 있어 예로부터 바닷길을 통한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작은 포구마다 배가 드나들었고, 그 곁에는 자연스럽게 장터가 형성되었다. 포구와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지역 경제를 지탱하고 공동체의 생활을 연결하는 중심지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철도와 도로가 발달하면서 포구 중심의 교역 구조는 급속히 쇠퇴했고, 수많은 장터는 사라졌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 흔적은 지명 속에 남아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 ‘포(浦)’, ‘장(場)’, ‘장평(場坪)’ 같은 지명은 과거 시장과 교역의 흔적을 증명하는 귀중한 기록이다.

경상도 포구 장터 기록

본 글에서는 경상도 곳곳의 사라진 포구 장터를 지명과 사례 중심으로 탐구하며, 그 속에 담긴 생활사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통영 장평마을 – 어촌 장터의 중심지

경상남도 통영시 미수동에는 ‘장평’이라는 지명이 있다. ‘장평’은 장터가 열렸던 넓은 평야를 뜻한다. 통영은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던 군사적 요충지였지만, 동시에 어획물이 풍부한 어촌이기도 했다. 장평 장터에서는 인근 바다에서 잡은 생선과 해산물, 그리고 내륙에서 가져온 곡물과 생활 용품이 활발히 교환되었다. 당시 장날이면 어민, 농민, 상인들이 몰려들어 장터는 활기를 띠었고, 주변에는 객주와 주막이 형성되어 교류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은 도시화로 장터의 기능이 사라졌지만, ‘장평’이라는 지명은 과거 어촌 장터의 흔적을 선명히 보여준다.

울산 장생포 – 고래잡이 이전의 장터 흔적

울산 장생포는 근대 이후 고래잡이 산업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작은 포구와 장터가 공존한 마을이었다. ‘장생포’라는 이름 자체가 ‘장터가 있던 포구’를 의미한다. 고래 산업이 발달하기 전까지 이곳은 어민들이 모여 생선과 해산물을 교환하던 시장이었으며, 내륙에서 가져온 곡물과 교환되었다. 특히 장날이면 울산 내륙의 농민과 포구 어민들이 함께 모여 다양한 물품을 거래했다. 근대 이후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고래잡이 항구로 변모했지만, 지명 속 ‘장’은 여전히 장터의 기억을 담고 있다.

포항 구룡포 – 동해안 장터의 대표적 흔적

포항 구룡포는 오늘날 대규모 항구로 발전했지만, 과거에는 작은 포구와 장터가 공존하던 곳이었다. ‘구룡포’라는 이름 속 ‘포’는 곧 장터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동해안에서 잡히는 오징어, 꽁치, 멸치가 집중적으로 모였고, 이를 내륙으로 운송하기 위한 교환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구룡포 장터는 동해안 어업 경제의 중심지였으며, 장날이면 인근 마을은 물론 멀리서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금은 항구와 수산시장이 도시형으로 바뀌었지만, 지명 속 ‘포’는 과거 장터의 기원을 분명히 보여준다.

진주 남강포구와 장시(場市) 흔적

경상남도 진주는 남강을 중심으로 교통과 상업이 발달했다. 남강변에는 여러 포구가 있었고, 그곳마다 장시가 형성되었다. 특히 진주성 인근 포구 장터는 남강 수운을 통해 내륙과 바닷길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역지였다. 남강변의 장터는 쌀, 베, 소금이 활발히 거래되었고, 장날이면 수많은 배가 강가에 정박했다. 오늘날 남강변에는 장터 흔적이 사라졌지만, ‘장대동’, ‘장군동’ 같은 지명이 과거 시장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부산 자갈치 이전의 포구 장터

부산의 대표적인 시장인 자갈치시장은 근대 이후 형성된 것이지만, 그 뿌리는 포구 장터에 있다. 자갈치 앞바다는 조선시대부터 작은 어촌 포구였고, 이곳에 자연스럽게 장터가 형성되었다. 당시 어민들이 잡아온 고등어, 멸치, 조개류가 거래되었으며, 장날이면 산지 상인과 도시 주민들이 몰려 활기를 띠었다. 이후 항만 개발로 포구 자체는 사라졌지만, 장터의 전통이 자갈치시장으로 계승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경상도의 포구 장터와 교역 구조

경상도 포구 장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어획물 중심 교역: 남해와 동해의 수산물이 내륙 곡물과 교환되었다.
  • 수군과 상인의 공존: 통영과 울산처럼 군사적 거점과 시장이 함께 발달했다.
  • 근대화 이후 변모: 울산 장생포, 부산 자갈치, 포항 구룡포처럼 포구 장터가 도시형 항구·시장으로 발전했다.

즉, 경상도의 장터는 단순 교환의 장이 아니라, 군사·경제·문화가 결합된 복합 공간이었다.

 

경상도 주요 사라진 포구 장터 지명 정리

지역현재 지명과거 기능(포구/장터)특징적 의미
통영 장평마을 장터 넓은 평야에 장이 서던 어촌 장터
울산 장생포 포구+장터 고래잡이 이전, 어민 교역 중심지
포항 구룡포 포구+장터 동해안 오징어·꽁치 거래 중심
진주 남강변 장터 강변 포구+장터 수운을 통한 쌀·소금 교역 중심
부산 자갈치 포구 포구+장터 포구 장터가 현대 시장으로 계승

장터 지명에 담긴 생활사적 의미

경상도의 지명 속에는 장터의 흔적이 뚜렷하다. ‘장평’, ‘장생포’, ‘구룡포’는 모두 장터가 있었음을 알려주며, 이는 단순히 옛 지명이 아니라 과거 생활의 기록이다. 특히 경상도의 장터는 어획물과 직결되었기에, 지역 주민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지명을 통해 과거를 복원하는 일은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지역민의 기억을 되살리는 중요한 작업이다.

경상도의 사라진 포구 장터는 오늘날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지명 속에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다. 통영 장평마을은 어촌 장터의 흔적을, 울산 장생포는 고래잡이 이전의 포구 장터를, 포항 구룡포는 동해안 어업 교역의 중심지를 보여준다. 진주의 남강 장터와 부산 자갈치 포구 또한 장터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명은 단순한 행정 명칭이 아니라, 과거 사람들의 삶과 경제 구조를 담아낸 귀중한 생활 기록이다. 앞으로 경상도의 사라진 포구 장터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일은 지역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문화·관광 자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소중한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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