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장 - 수로에서 무역항

포구와 장터 기록

군산장 - 수로에서 무역항

xolo1215 2025. 7. 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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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에서 무역항

조선 후기 금강 하구의 포구가 세계로 열린 항구가 되기까지

전라북도 군산, 지금은 산업과 항만도시로 알려진 이곳도 한때는 포구 옆 작은 장터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 후기, 금강 하구의 완만한 수로를 따라 형성된 군산포(群山浦)는 곡물과 생필품이 오가는 수운의 중간 기착지였다. 당시 이 지역은 금강 상류의 강경·삼례 등에서 실려 내려온 물자가 모이던 포인트였고, 해양과 내륙이 만나는 결절점으로 기능했다. 군산장은 이 포구를 기반으로 발달한 장터였으며, 단순한 전통시장이 아닌, 근대 무역항으로 진화하는 과도기적 공간으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조선 후기 군산포의 기능과 장터의 출발

군산포는 금강 하구 서쪽에 형성된 천연 포구로, 조선 중기부터 그 지형적 이점을 바탕으로 조운선 및 민간 운송선의 정박지 역할을 했다.
군산장은 이러한 군산포에 형성된 5일장 중심의 시장으로 시작되었으며, 초기에는 금강 수운을 따라 내려온 쌀, 보리, 소금, 건어물 등이 거래되었다.

삼례나 강경에서 내려온 세곡을 군산포에서 임시 하역해 저장하고, 이후 해상 운송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이와 동시에, 군산포를 거쳐 서해안을 따라 남하·북상하는 민간 상선들이 들렀기 때문에, 장터는 점점 다양한 물품이 거래되는 종합 시장으로 변모했다.

초기의 군산장은 규모가 크지는 않았으나, 수로 상거래의 전진 기지로 기능하며, 주변 농촌의 농민들과 물류 상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공간이었다.

장터에서 거래된 주요 품목들 – 내륙과 해안의 물자가 만나다

군산장에서는 금강 상류의 내륙지대와 서해 연안의 어촌에서 생산된 물자가 동시에 교환되었다.
이로 인해 장터는 특정 품목 중심이 아닌 다품목 복합 거래 시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내륙 수로를 통해 유입된 상품

곡물: 쌀, 보리, 콩

직물: 삼베, 모시, 비단 조각

생필품: 기름, 된장, 간장

나무 자재 및 생활잡화

 

해안·서해 지역에서 유입된 상품

건어물: 말린 갈치, 멸치, 청어

젓갈류: 새우젓, 황석어젓

염전 소금

조기, 굴, 조개류

군산장은 이처럼 내륙과 해안의 물류가 만나는 경제적 허브였으며,
물품의 직접 거래뿐 아니라 객주를 통한 위탁판매, 외상거래, 중개 거래도 활발히 이뤄졌다.

군산 객주와 포구 주변 경제 생태계

조선 후기 군산장 주변에는 수많은 객주(客主)와 여인숙, 창고, 주막, 짐꾼조합 등이 형성되어
장터는 단순한 거래소가 아니라 작은 경제 도시 형태로 성장했다.

객주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

 

상품 위탁 판매 및 중개

외지 상인의 숙식 제공

포구 도착 선박 정보 전달

장부 정리 및 채권·채무 관리

세곡 운반 관련 관리 행정 서포트

이러한 객주 중심 경제 구조는 군산이 이후 근대항으로 성장하는 기초 인프라가 되었다.
즉, 포구 + 장터 + 객주 + 창고 + 인력 = 항구 경제 구조의 시작이었다.

 1899년 개항과 함께 변화한 군산장의 성격

조선 말기인 1899년, 군산은 정식으로 개항장으로 지정되며
일본, 청국, 서양 세력과의 무역 항구로 변화하게 된다.

이 시점부터 군산장은 단순한 내수 유통장이 아니라 **‘무역 지원형 시장’**으로 성격이 변화한다.

변화된 군산장의 모습

곡물은 내륙으로부터 유입되었지만, 일본 상인에게 대량 판매

근대 창고시설 및 세관 설치로 인해 장터가 항만 배후지로 기능

일본 상권 주도의 상점, 주류상, 외국 상품 판매소 등장

전통 객주들은 무역 중개인으로 역할 변화하거나 사라지기 시작

이 변화는 군산장 자체의 규모를 확대시켰지만, 동시에
조선 전통 시장 구조의 해체일본 상권의 잠식이라는 이면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군산장  식민지 수탈의 창구로 전락

개항 이후 불과 10여 년 만에 군산은 일제의 쌀 수탈 항구로 전환된다.
특히 1920~30년대에는 전라북도 일대에서 생산된 쌀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대량 수출되었으며,
군산장은 이 유통 구조의 배후지로 완전히 통합되었다.

일제강점기 군산장의 모습

일본인 상점가, 은행, 창고가 장터를 둘러싸듯 확장

전통 장꾼, 객주, 뱃사공은 노동력 공급자로 전락

곡물가 폭등 → 지역 농민의 삶 악화

이 시기 군산장은 과거의 활력과 공동체성을 상실하고,
식민지 경제 구조에 편입된 ‘수탈형 장터’로 기능하게 되었다.

현대 군산장 – 유산과 흔적으로 남은 공간

해방 이후 군산은 계속해서 산업도시로 성장했지만,
전통 장터인 군산장은 점차 소멸하거나 다른 상권으로 이전되었다.

현재 ‘군산 장터’는 공식적 명칭으로 존재하진 않지만,
다음과 같은 형태로 그 유산이 이어지고 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앞 전통시장 거리

군산 월명시장, 공설시장 등 지역 시장으로 기능 이전

장미동, 신흥동 일대에 당시 상권 흔적 보존

또한 군산항 주변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건물과 창고가 여전히 남아 있어,
군산장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체험 가능한 역사 교육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군산장은 조선의 장터에서 세계로 열린 항구로 변모한 역사의 증인이다

군산장은 단순한 전통시장이 아니었다.
그곳은 조선 후기 수로 중심 경제의 결절점이었고,
근대화의 거센 물결을 맞아 항구도시로 변모한 살아있는 역사 현장이었다.

초기에는 강에서 흘러온 쌀과 생선을 사고팔던 공간이었고,
후기에는 조선의 물류를 바다 건너까지 연결한 무역 항만의 배후 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장터는 비록 형태를 달리했지만
군산의 골목과 건물, 시장과 창고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흔적을 걷고,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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