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장터 오일장

조선생활사시리즈

조선시대 장터 오일장

xolo1215 2025. 7. 21.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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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장터, 단순한 시장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장날은 단순한 물건 거래일이 아니었다. 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마을과 마을이 연결되는 사회적 장이었다. 특히 오일장은 조선 전역에서 폭넓게 운영되던 독특한 상업 시스템으로, 지역 경제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장터가 마을 경제의 중심이었으며, 농민, 상인, 장인, 여인들 모두가 장날을 기다렸다. 장터가 열리는 날에는 근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였고, 물건 거래뿐 아니라 풍물놀이, 씨름, 마당극 같은 다양한 문화활동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시대 장터 시스템의 핵심인 오일장 운영 방식과 장날에 볼 수 있었던 다채로운 풍경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이 장날을 중심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통해 조선시대 생활문화를 생생하게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장터 오일장

 조선시대 오일장의 운영 원리와 역사적 배경 

오일장은 말 그대로 다섯 날마다 한 번씩 열리는 장터였다. 조선시대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농사를 중심으로 살아갔기 때문에 매일 장을 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오일장 시스템이다. 이는 지역 주민들에게 일정 주기마다 생활필수품을 구입하고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오일장은 음력 날짜를 기준으로, 1일과 6일, 2일과 7일, 3일과 8일, 4일과 9일, 5일과 10일에 맞춰 각기 다른 마을에서 열렸다.

이러한 방식 덕분에 인근 여러 마을 사람들이 서로 교차 방문할 수 있었고, 상인들은 장날 스케줄에 따라 여러 장터를 순회했다. 오일장은 농민들에게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중요한 창구였고, 상인들에게는 다양한 지역을 돌며 거래를 확장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조선 후기 상업이 활발해지면서 오일장은 점차 확대되었고, 지방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오일장이 활발했던 지역은 주로 농업과 어업이 발달한 곳이었다. 내륙 지역에서는 쌀, 콩, 팥, 마늘, 배추 같은 농산물이 거래되었고, 해안가 장터에서는 젓갈, 미역, 소금, 생선 등이 주요 거래 품목이었다. 방물장수, 약장수, 엿장수 같은 이동상인들은 오일장 날짜에 맞춰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동하며 상업활동을 이어갔다. 이런 오일장 시스템은 상업활동이 자연스럽게 마을 공동체와 엮이는 구조였고, 마을 사람들의 생활주기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장터의 구조와 주요 거래 품목

조선시대 장터는 크게 장터 마당, 포목전, 음식거리, 가축시장, 생활용품 구역 등으로 구분되었다. 중심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포목전과 잡화상이 자리를 잡았다. 마당 한쪽에서는 농민들이 직접 농산물을 들고 나와 쌀, 콩, 마늘, 채소 같은 생필품을 판매했고, 다른 쪽에서는 어부들이 포구에서 들여온 생선, 미역, 젓갈을 판매했다.

포목전은 장터의 꽃이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천과 직물, 색색의 한지, 바늘과 실 같은 재봉용품이 거래되었다. 여성들은 주로 포목전과 잡화상 주변에 모였고, 아이들은 옆에서 엿장수와 장난감 상인을 따라다니며 장터 특유의 흥겨움을 만끽했다. 가축시장에서는 주로 소, 돼지, 닭이 거래되었으며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도 판매되었다.

특이한 점은 장터가 단순히 거래만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장인들의 실시간 제작 현장이었다는 것이다. 장터 한쪽에서는 대장장이가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옹기장이들은 현장에서 그릇을 굽기도 했다. 약초상들은 말린 약재를 펼쳐놓고 민간요법과 함께 약초를 추천했다. 이런 장터 구조는 거래와 문화, 정보교류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장날의 오락문화와 마을 축제

조선시대 장날은 단순한 거래일을 넘어 마을의 소소한 축제 날이었다. 장터에 풍물패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풍물패가 꽹과리, 장구, 징, 북으로 흥을 돋우면 장터는 활기가 넘쳤다. 풍물패가 선두에 서서 마을 입구부터 행진하며 장터 마당까지 들어오면 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 들어왔고 장터는 금세 사람들로 북적였다.

장터에서는 씨름판도 마련되었다. 청년들은 씨름장에 모여 서로 힘을 겨뤘고, 마을 어르신들은 그 광경을 보며 박수를 쳤다. 판소리와 마당극 공연도 장날의 인기 오락이었다. 유명한 소리꾼이 장터에 오면 주막 앞 평상이 순식간에 꽉 차고 사람들은 흥에 겨워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켰다.

어린이들은 장터에서 굴렁쇠 굴리기, 팽이치기, 줄넘기 같은 민속놀이를 즐겼다. 여자들은 널뛰기판이 세워지면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결혼 적령기의 남녀들이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특히 장날은 젊은 남녀의 만남의 장이기도 해서, 많은 부부가 장터에서 인연을 맺었다는 구술 기록도 전해진다.

장터 주변 주막에서는 장날 특유의 별미가 준비되었다. 막걸리, 동동주, 빈대떡, 국밥, 순대 등이 인기였고, 사람들은 장터 오락문화를 즐긴 뒤 주막에서 피로를 풀었다. 장날은 그 자체로 마을 사람들에게 단순한 쇼핑의 날이 아니라 즐거운 하루였고, 농사일로 지친 마음에 활력을 주는 시간이었다.

 조선 장터는 생활문화의 중심이었다 

조선시대 장터는 단순한 거래의 공간이 아니라, 서민들의 생활과 문화가 꽃피는 중요한 장소였다. 오일장 시스템 덕분에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사고팔 수 있었고, 다양한 지역의 특산품과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장터는 정보의 교류, 사람들의 만남, 오락과 여흥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장날 풍경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이는 조선시대의 살아있는 생활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오늘날 전통시장의 모습에도 이 장터 문화가 남아 있고, 과거 조선 사람들의 활기찬 생활 풍경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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